세밑에 홀로서서
천 병 태 (시인)
어쩌면 우리가 이 땅을 딛고 사는 일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햇빛 아래서는 역사를 빚어내고
달빛 아래서는 묘한 신화를 돋궈내는
그런 일이 수천 수만의 세월을 이어온 것인데
눈을 지그시 감고 곰곰이 생각하면
본대 사람이란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를 결코 뛰어넘지는 못할 것인저,
마시는 물과 바람에 곱게 혼이 익어
아름다운 혼들이 어울려 서로 사랑하던 일은
또 얼마나 우뚝하고 기쁜 일인가
세밑에 홀로 서서 바라보면
희노애락이 무늬를 이루어 펼쳐진
지난 한해, 삶이 비록
우리의 양 어깨를 짓누르는 멍에였다고 하더라도
주저앉아 땅을 칠 수만은 없는 노릇인 것을.
허리 곧추 세우고 가슴을 열고
힘차게 솟구치는 새해를 기다리는 것이
오늘 생각하면
이토록 눈물겹게 행복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