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의 괴수인 이완용이 진도에 ‘조선귀족보식원’을 설립하고 몇 년동안 기거하였다 는 기록이 있어 흥미롭다.
지금부터 89년 전인 1917년 ‘매일신보’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이완용 백작 진도에 식목을 착수’(매일신보, 1917년6월19일)
“전남 진도에 있는 조선귀족보식원 식목사업을 살피기 위해 작년(1916년)에 이완용백작이 진도 식목원을 실지답사 하였는데 그 결과 이를 대규모로 더 확장하기로 하고 기히 허가가 되어있는 5천 수백정보에서 6천 정보를 추가로 넓혀 총1만1천여정보 허가를 출연중 이더니 이번에 허가를 취득하여 동 회사에서는 곧 자본금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증자를 한다는데 금년 가을부터 식목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한다고 하더라” 는 기사이다.
이 기사를 보면 진도에 세운 ‘귀족보식원’은 1916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살펴지는데 보식원의 위치는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으나 1개 면의 면적에 가까운 큰 넓이로 아마 첨철산 이나 여귀산 또는 지력산이 아니였을까 추정된다.
또 하나의 기록은 이상연(1904년 쌍정리 출생, 작고)씨의 증언 기록인데 “1915년 이완용이 서울에서 내려와 진도읍 조동식(현, 유도회 진도지회장 규준씨 선친)씨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글도 여러 해 가르쳤다고 하는데 이때 조동식의 누님인 조원예를 학교에 입학을 시켜 주었는데 이것이 진도 여학생 1호라는 기록”도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유도회장 조규준씨 집에는 지금도 이완용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니 이 두 이완용은 년대로 보아 동일인이 분명한 것으로 살펴지는데 이완용은 장기간 체류하면서 학교에서 글도 가르쳤다 하니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또한 기록으로는 의신면 침계리 박을배(전, 면장 원기씨 선친)씨가 이완용을 죽여야 한다고 칼을 품고 이완용과 친분이 있는 임회면 상만리 이모씨를 대동하고 찾아갔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침계리 동지)도 있다.
어찌됐던 ‘시대일보’등 여러 근거 기록들로 보아 이완용이 진도에 ‘조선귀족보식원’을 설립하고 여러 번 다녀간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때 나무를 심었다는 장소나 수종은 지금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옛 토지대장에서 그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면 수종도 알아낼 수 있을지 흥미로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