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의 낱알 수가 120개인 이삭과 150~170개 정도가 되는 이삭의 겉모양은 겸손과 거만함으로 나타난다.
낱알이 잘 여물었거나 수가 많으면 그 무게 때문에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모양새가 퍽이나 공손하다.
그러나 낱알이 여물다 말고 쭉정이가 되었거나 수가 적으면 하고 싶지 않은 인사를 억지로 하는 것처럼 고개가 뻣뻣하다.
이러한 풍경을 먼저 보았던 아주 먼 옛날의 조상들이 만들어낸, ‘잘 여문 이삭일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이 눈으로 쉽게 들어온다.
현재의 내게까지 전해진 것처럼 먼 후손까지 살아있을 것 같은 격언을 되새김하면서 논 귀퉁이의 나락을 베었다.
나락이 실한 벼 포기는 젖살 통통하게 오른 아이를 보듬었을 때의 느낌으로 옹골지다. 멸구떼나 이화명충에 시달려서 여물다 만 이삭은 그야말로 젖배 곯은 아이의 앙상함이 그대로 가볍고 짠하다.
“메루가 많은데 약을 하까? ” 남편이 그랬다.
“어찌케 청소하대끼 볼가지를 다 잡는당가 그작저작 며칠 있으믄 낼모레 타작할 것인데 약값만 아깝제.”
논바닥을 말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물꼬를 트면서 남편이 했던 말을 싹둑 잘라버린 것이 후회스러웠다.
나락 포기를 베는 이 순간을 위해서 볍씨 뿌리던 4월부터 논바닥에서 그렸던 그림들이 애잔하게 몰려왔다.
모판에 볍씨를 뿌린 다음에 싹이 올라올 때의 풍경은, 뱃속에서 갓 나온 첫아이가 손가락을 고물거릴 때 모습과 닮은 것이 신기했고, 모종을 논바닥에 심기까지 모판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던가 (그때 어긋난 어깻죽지가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해서 나락을 벨 때까지 깜짝 놀라게 아플 때가 있다).
또 모를 심자마자 모가 제 시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타던 애간장은 여름에 멸구 떼로 더 타게 되고.....
나락 타작을 절반 정도 했을 때부터는 맥이 풀리기 시작했다.
나락을 다 훑으면 몇 kg이 되겠다 추정을 해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지출해야 할 구멍이 휑했다.
추곡수매를 없애면서 한 가마 당 만 원씩 낮아진 쌀 가격만큼의 틈새가 연체이자로 남았다.
창고 가득 쌓아놓은 나락 포대를 보면, 몇 끼니를 굶어도 배고프지 않고 든든해야 하고 탱탱하게 여문 나락을 손바닥에 펼쳐놓고 들여다보면 그간의 수고가 아름다웠다고 확인할 수 있어야 이치에 맞다.
그런데 아니다.
이유가 분명한 분노가 짚을 태우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TV를 보다가도 불쑥불쑥 뛰쳐나와서 생활을 어지럽힌다.
이렇듯 현재까지 불어 닥친 수입개방만으로도 농부의 삶과 가치관은 뿌리 채 흔들려서 휘청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뽑히고 있는 뿌리에 던져지는 원자폭탄이다.
그러니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재앙인 것이다.
노동과 노동의 대가가 영원히 만날 수 없게 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 폐기를 위한 몸부림은 통장의 잔액을 부풀리고자 하는 희망사항이 아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투쟁인 것이다. 최소한의 생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