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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06년11월07일 00시00분 ]

오늘은 우리 가족들 넷이서 나들이를 나섰다.
여귀산 건너편에 자연스러운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먹거리는 스스로 해결하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므로, 시작하기 전에 배울 것이 있을 터였다.
지금 살고 있는 자연의 집이 여귀산 남쪽 자락이라면, 그 누군가의 터전은 산 너머 북쪽 자락이다. 걸어서 산 하나를 넘으면 그곳에 닿을 수 있겠지만, 외다리인 내 몸의 형편상 자동차를 타고 빙 둘러 가야 했다.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해사한 낯빛의 남자와 깊은 눈빛과 음성을 지닌 여자가 어울려 살고 있었다.
그곳에 터를 잡은 지 십 년이 되어간다고 했다.
널찍한 창고를 직접 개조해서 시원스런 통 유리창을 내고 벽면을 차지한 책꽃이에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 말고는 어지간한 세간들은 생략해버린 그들의 집이 인상 깊었다.
덕분에 나의 마음이 집 주인들의 눈빛을 타고 그 속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의 농사짓기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파종을 하거나 모종을 심을 때, 벌레들 먹을 몫을 계산에 넣는다는 이야기, 농약이나 비료 없이 자연이 해 주는 대로 얻어먹는다는 이야기, 벌레가 먹고 있는 농작물을 보고 애를 태우다가도 그 때를 잘 넘기면 벌레를 이기고 씩씩하게 살아나는 채소들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 그래서 자연을 알게 되고 믿게 된다는 이야기, 일부러 심지 않아도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으로 저절로 열매 맺는 토마토, 고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은 저 홀로 오지를 않고 알 수 없는 향기에 실려 가슴을 열고 불쑥불쑥 들어왔다.
처음 그곳에서 삶을 시작했을 때, 한 칠십 퍼센트 정도의 호감을 가졌었다고 한다면, 해가 갈수록 구십 퍼센트, 백 퍼센트, 지금은 백십 퍼센트 정도로 그 마음이 커졌다고 말하는 여주인의 눈가엔 웃음이 햇살처럼 번졌다.
아니, 호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약한 것일지도 몰랐다.
집 주인 스스로가 여귀산 지킴이로 자칭하는 것처럼, 그 부부는 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마당 한 귀퉁이엔 부부가 손수 지은 소담스런 황토방이 정갈한 자태로 앉았다.
그 옆엔 버섯을 키우고, 젓갈 등을 저장하는 전나무 숲 그늘, 언덕길을 돌아 내려가니 갖가지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 그 곁으로 심어진 참 다래와 포도나무들, 시원스레 뻗은 소나무 아래로는 색깔도 선명한 한련화들, 입구엔 감들을 매단 채 팔을 벌리고 선 감나무들, 언덕 위로는 널따란 배추밭, 자연스럽게 키운 콩으로 담갔다는 된장을 담은 장독들, 은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부부, 이 모두를 품고 있는 여귀산.
산자락에 자리를 잡고, 산이 키워 주는 것들을 채취해서 먹고 마시며 사는 부부는 다름이 아니라 여귀산이었다.
그들은 거기에 깊이 뿌리내려 하나가 되어 있었다.
산은 사랑이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물론 바다도 들도 하늘도 모두 사랑을 품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배반하면서 우리 속의 황폐함을 그곳에 옮겨 놓았다.
모든 것을 값없이 내놓는 들판에 선을 그어놓고 온갖 화학약품들로 유린하고는 쉴 새 없이 부려먹고 갈취하는 바람에, 들판은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육지의 모든 악취와 쓰레기들을 감당하느라 바다도 몸살을 앓고, 구름은 본의 아니게 산성비를 내린다.
하지만 언제라도 신음하는 사이사이로 무엇인가를 내밀어주는 손을 가진 것이 자연이다.
아직도 바다와 들은 지치지 않고 공짜 선물들을 길러내고 있다.
산이 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래서 은혜의 장대한 모습을 상처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도 부부는 그것이 그리웠고, 그것을 알아보았고, 그것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눈매마저도 산그늘을 닮아가는......
돌아오는 길에 이름을 물었으나, 여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이름 없어요 그저 여귀산 지킴이입니다”라고 한다.
그것이 맞다.
존재의 향기를 그윽하게 맛보았는데, 그 존재와 관계도 없는 이름이 무어 중요하랴.
부부는 잘 숨어 사는 이들이어서 신선하고 맑았다.
누구라도 먼지처럼 떠돌다가 그 고요를 침입하기 어렵도록 꼭꼭 숨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만나려면 먼저 깃들어야 할 것이다.
어디에라도 자연의 한 자락에 깃들어서 ‘그래요’하고 순명하며 주시는 선물 다 받아서 어린아이처럼 행복해지는 것이 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당신의 삶이 불안한가? 그렇다면 자연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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