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들일하기에 딱 좋은 시절이다.
이름 하여 가을이라고.
"가을" 이란 말은, 본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먼 데 시선을 두고 추억을 더듬으며 감상에 빠지게 할 것 같은 낱말이 그렇듯 생산적인 의미였다는 게 새삼 반갑다. (번들번들한 서울 번화가에서, 얼굴 시커멓게 그을린 같은 농사꾼을 만난 것처럼 친해지고 싶어진다).
이렇듯 좋은 계절에 해남과 진도 농사꾼들은 겨울배추 시집보낼 혼수 장만하면서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봐야 한다.
무명 솜을 널어놓은 듯한 투명한 구름에라도 비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불안을 다독이면서 말이다. 배추가 본밭에서 시집을 사는 동안 생의 밑천이 되라고 퇴비를 뿌리면서 농사꾼은 기원한다.
부모는 자식의 반팔자임을 곱씹는다.
열심히 살았건만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몸뚱이 어디 한 구석에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방 끈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삶이 얼마나 많은 오해를 받았던가. 그렇게도 아프게 했던 시선을 덜 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역병이든 노균병이든 파밤나방, 배추흰벌레가 괴롭히더라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농사꾼은 어린 배추에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퇴비 뿌리는 손은 푸지지만 그 양은 아쉽기만 하다. 이런 저런 기대와 걱정을 함께 담아서 뿌린 퇴비가 햇빛에 마를 새라 쟁기질하는 농사꾼의 마음은 트랙터보다 급하게 달린다.
쟁기 날이 지나간 곳까지 배추는 안전하게 뿌리를 내리리라.
배추가 시집가서 새로운 삶의 조건과 타협을 하느라고 일주일 정도 몸살을 하고 난 후부터 먹을 양식으로 비료도 뿌린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한 끼 식사는 밥 한 그릇 안팎에 불과한 사람처럼 배추 또한 성장에 필요한 양만큼만 먹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살아감에 있어서 밥이 우선이지만 또한 밥만으로는 안정과 균형까지 보장되지 않는 것이 생명이리라.
사람끼리 살갗을 비비고 관심 담은 눈길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식물에게는 미량요소가 부족하거나 없으면 어느 순간 결핍증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탄생부터 따뜻한 마음 받아보지 못했거나 그런 시선으로 채워져야 할 자리가 비어 있어서 일상이 늘 위태롭기만 한 사람은, 가던 길 무던하게 잘 걷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지쳐 자빠지듯.
배추에게는 없으면 안 되는 미량요소가 석회질이다.
붕사를 뿌려주지 않으면 배추의 안녕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김치 담그기에 적당하게 배추 잎이 50장 내외로 속이 채워졌더라도 석회질의 여부에 따라 단단하거나 물러진다.
인간의 사랑이 일상적인 생활로 실천되는 것과 같이 식물에게는 일정한 수분유지가 생의 꼭짓점(김치)까지 무사할 수 있기 때문에 수분증발을 막기 위해 비닐을 씌운다.
비닐까지 씌우면 혼수장만은 다 한 셈이다. 배추가 시집가는 날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바람이 없고 햇빛이 드세지 않은 그런 날이 배추가 시집가기 좋은 날이다.
“불믄 날아갈새라 까불믄 넘어질새라 진자리 마른자리 더듬어 켜서 시집 보내믄 끝일 줄 알었등만 워메-! 참말로 공력들여야 할 일이 지달리고 있드랑께에-!”
그녀의 어머니, 농사꾼이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