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간직해 두셨던가 보다.
지난 장마철, 나는 청주 부모님 댁에 잠시 머물러 갔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빛바랜 얇은 책자와 오래 묵은 편지 몇 통을 내게 살짝 건네 주셨다.
편지는 대학 시절, 고등학교를 다니던 여동생에게 내가 보냈던 것들이었다.
내 머리 속에서는 그 때의 기억이 거의 지워지고 없는데, 편지 속에는 그 때의 내가 생생히 살아있는 듯 했다.
나는 동생에게 최선을 다해 생활하고 공부하라고 말하고 있었고, 편지의 말미에는 ‘S 안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께’라고 맺음말이 적혀 있었다.
참으로 새삼스럽고 놀라운 발견이었다.
내 기억으로 대학 시절의 나는 방황 그 자체였다.
갈라진 자아로 인해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범벅이 되어 그것을 감추려고 온갖 오만함의 성벽으로 나를 둘러치고 다니던 때였다.
분명 ‘S 안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께’ 말을 걸었지만, 그것은 가사 상태에서, 나 자신이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지 자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내놓은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도 모르는 새에 또 하나의 나가 끊임없이 하느님과 대화하고 있었음이 드러나 있었다.
퇴색한 얇은 책자의 표지에는 ‘삶’이라는 제목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직접 손으로 써서 복사를 한 책자로, 글씨체는 바로 나의 것이었다. 첫장을 열어보니 서시, 다음 장은 발간사, 그리고 여러 친구들의 글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친구들의 글에는 이미 삶의 목적을 발견한 흔적이 보였고, 어떤 친구는 하느님과 합일되어 사는 기쁨을 고백하고 있었으며,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각오가 깃들어 있었다.
아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친구들의 가슴 속에 살아계시는 신의 말씀들. 그들은 모두 나의 스승들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모르고, 인생이 무엇인지, 사는 목적은 또 무엇인지 알지 못해 방황하고 우울했을 때, 그 많은 스승들은 나를 돕기 위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곤 했었다.
그 때 나는 어떻게 했었던가?
돌이켜 보니, 그 때의 나는 부끄러운 자신을 숨기기 위해 문을 꼭 닫아걸고 화를 내곤 했었다. “네가 감히 어떻게 나를 알아?
나도 모르는데..”하며 소리를 질러댔던 것이다.
이제 책 속에 깃든 친구들의 기운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본다.
소중한 나의 사람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언제나 거룩하게 살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아니었던 내가 진정한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늘 똑같이 신을 향해 눈 뜨고 있었던 존재가 있었다.
바로 그 존재가 지금의 나 아닌가!
지극히도 사랑하는 나, 아름답고 예쁘고 귀여워서 어찌 할 바를 모를 정도인 연인.
도중에 여러 곳으로 한 눈을 팔았었지만 마침내 나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연인을 만나고야 말았는데, 알고 보니 그 연인은 늘 생생히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다.
편지 속에서, 빛바랜 책 속에서 그 연인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그 연인이 도처에 살고 있다.
내 마음이 온통 그 연인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