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는 뱃길이 있다. 그 뱃길을 따라 또 섬으로 들어간다. 로마에서는 이 뱃길을 육지의 길과 구분해서 액체(液體)의 길이라 부른다.
고향 어르신 한분은 어느 날 섬기행 떠나는 나에게 ‘육지의 길은 오솔길부터 시작해서 고속도로까지 만들어졌지만 바닷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육지 길은 큰 돈을 들여 고속화했지만 바다 길은 돈 들여 닦을 필요가 없다. 태고 적부터 고속도로였으니까. 그러나 쾌속선박이 다니지 않는 낙도 뱃길은 오솔길에 불과하다. 오솔길 조심해서 다니그라.’ 하셨다.
그 분의 말씀 떠올리며 뱃길을 따라 바다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작은 섬 죽도로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세기의 흐름을 보면 대부분 섬사람들의 지배를 받거나 그 문명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일테면 고대문명의 중심을 이뤘던 그리스는 다도해인 에게海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중세 바이킹족의 북구 석권이나 문명 또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연안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 낸 것이다. 근세에 와서는 영국이 그렇고 일본이 그렇다.
섬기행으로 다도해를 넘나들며 느끼는 것은 왜 에게해와 같은 우리나라 다도해는 아직 외롭게 홀로 고달파하고 있는가, 이다.
헌데 육지 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품고 있고 많은 시인들은 바다를 노래하곤 했다.
‘아, 바다 위에 떠 있는 헛된 구름이여’
‘바다 가운데서만 꿈을 꿀 수 있더이다’
‘남해 바다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바다에 나포된 조그만 땅덩어리/ 나 그 섬에서 평화를 찾네’
그러나 섬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라는 것은, 가끔씩은 뚫고 나갈 수 없는 철조망, 또는 탱자나무 가시울타리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바다에 갇혀 사는 섬사람들은 그처럼 바다를 찬양하는 아름다운 시어를 뱉어낼 줄 모른다.
그들에게 바다는 일용할 양식의 텃밭이지만 노상 그렇지는 않다. 바다는 때로 한 맺힌 여인의 긴 손톱과 같아서 섬 여기저기를 햝키고 헤집어 놓는다. 또는 어제 등 긁어 주던 영감을 꼬챙이에 끼워 데려가기도 하는 바다는 ‘징허게 싸나운 첩’이다.
작은 어선을 타고 살랑살랑 바람 이는 뱃길 가고 있는 때문인가. 죽도의 선착장에 닿을 때까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보탰다.
선착장의 콘크리트 말뚝에 어선의 밧줄이 묶이기도 전에 낚시꾼들이 서로 먼저 내리려고 자리다툼을 하는데 나는 뒷켠에 서서 그들의 욕심을 바라보았다.
‘그라제, 좋은 포인트를 차지하려면 한발이라도 먼저 가야한께.’
맨 늦게 나를 내려놓은 어선의 선장이,
“오후 4시까장 여그 선착장에 나와들 기십시요.”
큰 소리로 말하고 섬에서 멀어져간다. 바쁜 걸음으로 갯바위를 오르는 낚시꾼들은 뒤도 안돌아보며 손을 한번 들었다가 내리는 것으로 대답을 한다.
나는 낚시꾼과는 무관하게 선착장에 앉아 그물을 손질하는 아낙네들 곁에 앉는다. 아낙네들은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관심 없다는 투로 제 할일에 열중이다.
그들은 삶의 텃밭인 바다를 앞에 하고 황금을 건지기 위한 그물을 준비하고 있다. 황금을 건질 그물을 꿰매고 있는 아낙네들 곁에 앉아 시야에 잡히는 섬을 일별한다.
작고 예쁜 섬이다. 이대로 보존하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인즉, 그러나 순간, 재크린이 오나시스에게 반한 것이 아니라, 초호화 유람선을 타고 들락거릴 수 있는 스코트리오스 섬에 반했다는 섬을 떠올리며 또한 스코트리오스 섬을 사들여 해상 별장을 꾸며 인생을 즐기는 중, 세기의 내 노라 하는 여성들을 유혹했던 오나시스의 작태를 좋게 보아야 하는가, 나쁘게 보아야 하는가, 생각했지만 재크린과 오나시스가 샘날 뿐, 답은 없다.
전남은 최근 도서개발이라는 정책을 들고 관광문화사업에 열성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다도해 곳곳에 스코트피오스 섬과 같은 성격의 섬들이 생겨 쾌속 유람선과 함께 도시에서의 찌든 삶에 여백을 주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하는 섬이 될 터이다.
그러나 참으로 바람직한 것은 오래 전부터 묵묵히 바다에 갇혀, 또는 바다 밭을 일구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섬의 가치를 높게 평가 받아 섬사람들의 경제에 보탬을 주는 정책의 도서개발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혹은, 에게해가 고대 문명의 중심지인 터, 수많은 섬을 품고 있는 남녘 바다 다도해를 중심으로 근세의 해양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일까?
살랑살랑 일던 바람이 잠들었는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내 시야에 들어온다. 낚시꾼들이 찾는 최상의 포인트도 저 앞에 있다. 마치 손 내밀어 낚시꾼을 부르는 듯하다. 마침, 크게 휘청거리는 낚시줄을 끌어들이는 낚시꾼을 보면서 내 인가엔 절로 미소가 번진다. 나는 햇살 좋은 언덕 잔디 위에 벌러덩 눕는다. 구름 한 점이 흘러간다. 바다 가운데서 나는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