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찰산, 여귀산, 동석산, 금골산, 지력산…… 진도의 5대 명산이다. 높이가 1천 미터도 되지 않는 낮은 산들이면서도 ‘명산’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이유는 산세보다는 지리적 위치에 있을 것이다. 이들 산들은 진도의 동맥이며 젖줄이다. 산 정상에 올라 보면 동서남북 어디를 돌아봐도 다도해의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특히 첨찰산과 여귀산은 진도의 역사와 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2005년 8월경, 갑자기 첨찰산과 여귀산 봉수대 터에 철탑이 세워졌다. 그 정체는 ‘산불무인감시카메라’다. 산림청의 ‘산불무인감시시스템’ 구축 사업에 따라 진도군청 환경녹지과에서 설치했는데, 철탑 한 기의 사업비만 1억5천만 원(도비 30%, 군비 70%) 가까이 들었다. 또한 앞으로 조도 돈대산에도 철탑이 세워질 예정이므로 총 5억여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인 우리나라는 해마다 산불로 인해 인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가 현대적이고 효과적인 산불예방·진화 정책을 펼치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화된 시스템이라도 각 지역의 환경과 실정에 맞아야 효율성과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이유로 위치 선정”
진도군청 환경녹지과에서는 철탑을 세운 이유로 다음 세 가지 사항을 들었다. 첫째, 진도에 높은 산은 없지만 불에 잘 타는 해송이 우거져 있어 산불이 발생했을 때 대형 산불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 둘째, 등산객이 증가해 언제 산불이 발생할지 모르고, 산불진화 인력이 부족해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 셋째, 수년 전 진도에 큰 산불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주민과 공무원이 투입되었지만, 초기 진화체제를 구축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첨찰산과 여귀산 정상의 철탑에 설치된 무인감시카메라는 180도 회전하며, 반경 10km 내의 야산과 농지를 감시하게 된다고 한다. 군청 안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군청 직원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는 것이다. 군청의 설명대로라면 첨찰산과 여귀산 철탑은 진도와 다도해의 섬들에게는 든든한 산불 파수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진도의 지형과 마을 위치, 산불 발생의 양태 등을 볼 때 첨찰산과 여귀산 철탑은 그 효율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진도의 지형은 어떤가? 해발 400m가 넘는 산들이 드물 정도로 낮은 야산과 농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평지에서도 주변 야산의 상황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또한 골짜기까지 농지와 마을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산불은 주로 주민들의 농사나 일상생활에서 발생한다. 최초 발화지점이 마을 근처이고, 발화자가 현지인이라면 산불발생신고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휴대폰 보급률이 높아진 현재, 산불신고는 더욱 신속하고, 현장성이 있기 때문에 소방당국의 대처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군민의 안전과 이익보다는 행정 편의가 우선?”
산불무인감시카메라는 마을과 농지, 야산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진도의 지형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연기를 포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산불로 인한 것인지,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인지, 논이나 밭두렁을 태우는 연기인지, 짚풀을 태우는 연기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화단계까지 가는 데는 현장 확인을 할 수밖에 없다. 산마루까지 산불이 번져 있지 않은 경우, 무인감시시스템의 대응은 주민들이나 발화자의 직접신고에 의한 대응보다 훨씬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불무인감시카메라는 강원도와 같은 산악지역에 집중 배치될 필요가 있다. 험준한 산맥이 형성되어 있는 강원도는 산에서 지속적으로 연기가 나면 산불일 가능성이 크다. 또 등산객과 약초꾼들에 의한 실화가 많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자연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진도가 강원도처럼 산악지역이라면, 산불무인감시카메라는 여러 모로 산불예방과 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강원도와는 전혀 다른 지형 조건을 가지고 있는 진도에서 산불감시카메라의 효율성을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산불이 주로 발생하는 계절은 농한기에 속한다. 산림청에서는 지역 주민을 활용한 산불감시요원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 제도는 산불감시뿐만 아니라 농한기 때 소득이 없는 주민들의 가계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되어왔다. 갈수록 생활환경이 나빠지는 진도의 농촌 현실을 감안할 때 공익적인 이 제도는 오히려 ‘산림감시요원제(산불감시와 자연자원보호 목적)’로 확대 시행될 필요가 있다.
첨찰산과 여귀산에 세워진 철탑은 철거·이전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산불감시의 효율성 문제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산불 진화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철탑으로 인해 진도의 자연적·역사적·문화적 자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철탑에 설치된 산불무인감시카메라와 관련된 규정에는 ‘감시카메라 설치 예정지 선정은 시·군 및 국유림관리소 간의 사전 협의를 의무화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사전에 진도군청이 진도의 지형적 조건과 첨찰산·여귀산이 가진 자원 가치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다면 이런 낭비적이고 무책임한 행정은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귀산은 진도를 빛나게 해 주는 역사·문화자원”
여귀산 봉수는 서울 남산으로 올라가는 서남해안 봉수의 시발점이다. 《동국여지승람》 37권 진도군·해남현 편을 보면 ‘여귀산(女貴山) 봉수는 북쪽으로 점찰산(占察山)에 응하고, 점찰산 봉수는 북쪽으로 해남현 황원(黃原)으로 응하여, 동쪽으로 같은 현의 관두산(館頭山)으로 응한다.’고 나와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경국대전〉에 의하면 여수의 ‘방답진(防踏鎭) 봉수대’가 남해안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그 직봉 경로에서 서남해안 시발점이 진도의 여귀산 봉수대라고 나타나 있다.
여귀산 봉수는 고려시대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군사상 목적으로 설치된 통신 수단이었다. 봉수대는 본래 임무 이외에 적으로부터 침입을 받았을 때 군사적 진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귀산 정상부의 시누대 숲이 그것을 증명한다. 여수에서부터 진도까지 남해안선으로 연결된 봉수 경로를 볼 때 삼별초의 유적을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진도의 여귀산 봉수는 위의 문헌뿐만 아니라 <동국지도>와 <여지도> 같은 고지도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각 시대마다 봉수의 숫자는 차이가 있지만 여귀산과 그 봉수대는 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귀산은 조선시대까지 군사적으로 중요한 말 목장이었다. 《세종실록》111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보면, 적어도 1446년까지 여귀산 일대에는 세 곳의 목장이 존재했고, 진도 군사(읍)와 금갑도(접도), 남도포(남선) 만호가 관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여귀산에는 ‘말샘’이라는 지명이 전해지고 있고, 그 말샘은 아직까지 사각의 말구유 모양으로 남아 있다. 또한 산자락 사이사이의 푸른 목초지를 보더라도 그 옛날 군마(軍馬)들이 뛰놀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위 기록에 나오는 여귀산 목장은 조선후기 전국의 목장 배치도를 그린 <목장지도>(1663년 현종)에는 누락되어 있다. 1500년을 전후로 진도의 주요 목장이었던 여귀산 목장이 쇠퇴하고 지산면 지력산 목장이 대규모 관영목장으로 성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밖에도 여귀산에는 고사찰 죽림사(竹林寺)·봉성암(鳳城菴) 터가 있다. 특히 봉성암은 역사적·신화적 상징성이 큰 사찰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의 사찰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봉성암은 그 이름이 ‘궁성’ 혹은 ‘궁궐’을 뜻한다는 점에서 고려말 최씨 정권과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삼별초의 최대 유적인 용장산성과 남도석성의 동선, 용장사의 말사였을 가능성이 있는 봉성암, 또한 탑리(塔里)라는 지명(탑탑, 절탑)과 현재 구암사에 있는 5층석탑에 얽힌 전설 등에서도 여귀산의 역사·문화적인 중요성은 선명해진다.
“여귀산은 진도의 미래적 자연자원이다”
여귀산은 상록활엽수 집단자생지로 희귀 및 유용식물자생지(서부지방산림관리청, 2000)로 지정되어 있고, 천연보호림 A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여귀산의 상록활엽수에 대해 연구한 논문인 <진도 여귀산 상록활엽수림의 군집구조>(순천대학교 대학원 산림자원학과 장정재(2004년 2월)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여귀산 상록활엽수림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은 70과 147속 175종 28변종 1품종이 분포하여 총 203종류가 분포하고 있다. 그 중 산림청·임업연구원에서 정리한 우리나라의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 목록에 제시된 수종을 대상으로 하여 각 식물종의 분포상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은 보존 순위 57위인 등칡, 159위인 말나리, 그 외 붓순나무, 생달나무, 멀꿀, 자금우, 남오미자, 장딸기, 실거리나무, 좀마삭, 애기등, 가는잎처녀고사리 등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p.19)
‘상록활엽수 수종 중에서는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붓순나무, 광나무 등이 우점종으로 나타났고, 낙엽활엽수 수종 중에는 때죽나무, 비목나무, 산딸나무, 산벚나무, 자귀나무, 졸참나무, 팽나무 등이 우점하는 종으로 나타났다.’(p.33)
위 논문에서 주요 조사 대상지가 여귀산의 북부지역에 한정되어 있지만, 여귀산 전체적으로 볼 때도 그 분포도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동백나무와 참식나무, 후박나무 등이 여귀산을 푸른빛으로 감싸고 있고, 그 외의 203가지의 식물들이 여귀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여귀산의 미래적 자원식물에 있다. 여귀산은 풍란과 석곡 자생지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여귀산의 바위지대에서 풍란과 석곡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원식물 보호에 대한 관심이 없던 시기에 산채꾼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난(蘭) 자생지가 훼손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현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풍란이나 석곡은 발견되지 않는다. 최근에 석곡 3촉만 발견되어 작은 희망을 보여줬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도 외지인들로 추정되는 산채꾼(난과 분재 채취)들은 사시사철 여귀산에 오르며 무분별하게 희귀식물들을 채취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땔감을 위한 남벌로 여귀산 천연림이 훼손되었다면, 지금은 몇몇 장사치들의 남획으로 풍란과 석곡 등의 희귀 자원식물들이 돌이킬 수 없는 멸종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여귀산이 오래 전에 산림청에 의해 ‘희귀 및 유용식물자생지’로 분류되었는데도 진도군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별다른 정책을 펴지 않고 있다. 이는 진도군청이 여귀산을 흔한 야산 정도로 취급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여귀산의 자연자원적 가치만 인식했더라도 정상에 철탑을 세우는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귀산 훼손은 현재진행형…천연유전자원보호림에서 수종갱신”
현재 임회면 용호리 여귀산 일대(4.5㏊) 벌목지에는 '황칠나무' 2만여 그루가 심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황칠나무는 서부지방산림청(보성양묘사업소)에서 양묘한 수종으로 여귀산 자생종이 아니다. 산림청의 천연보호림 지정 사실과 학계의 논문을 근거로 할 때, 여귀산에서는 '황칠나무'가 자생하고 있지 않다.
영암국유림관리소 서용기 소장은 “여귀산에서 수종갱신을 목적으로 하는 조림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난대림 복원 차원에서 가급적 입목 형질이 좋지 않은 임지는 난대수종으로 갱신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라며, “지속 가능한 산림자원 관리지침에 따라(동일 지역에서 천연적으로 발생한 어린 나무나 종자의 묘목) 등 숲가꾸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귀산은 이미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입목 형질이 좋지 않은 임지'라고 볼 수 없다. 산림청에서 여귀산 조림을 위해 벌목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천연림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지속 가능한 산림자원 관리지침'에 의한 숲가꾸기도 '자생종'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여귀산 '수종갱신'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산림법>에서는 산림에 방화를 하는 것 못지 않게 산림훼손도 엄중하게 다루고 있다. 국립공원 안이나 사유림에서는 '산나물' 채취도 금지되어 있다. 이는 산림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소중한 자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산림법>에서는 산림에 방화를 하는 것 못지 않게 산림훼손도 엄중하게 다루고 있다. 국립공원 안이나 사유림에서는 '산나물' 채취도 금지되어 있다. 이는 산림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소중한 자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지정해제'가 목적?”
그러나 여귀산 일대를 '황칠나무'로 조림하는 것은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기에 큰 문제가 있다. 황칠나무는 경제수종이라는 이유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귀산에서 자생하던 상록활엽수들과 자생식물을 벌채하고 수종갱신을 할 만큼 황칠나무의 가치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황칠나무는 여귀산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수종갱신용으로 심고 있고, 그 경제적 효과도 막연할 뿐이다.
현재 여귀산에서 벌어지는 수종갱신은 자생종을 보호·증식하는 게 아니라 '황칠나무'라는 새로운 수종으로 대체하는 작업이다. 인위적으로 조림된 산림이 앞으로도 '천연보호림'으로 남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산불무인감시철탑)이 들어서 있기에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지정해제' 요건도 충족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