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운옹은 14세(1941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에 있는 무라모도 조선소에 취직하여 짐배(일명:곱배)와 목선(발동기)의 제작 기술과 수리 기술을 습득했다.
해방후인 21세(1948년)에 고향인 진도군 보전리에 돌아와서 해초선과 짐배를 제작하고 수리 하는일을 60세(1987년)까지 종사해왔다.
46년이란 세월을 오직 배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쳐 종사했다는 이야기다.
천성이 부지런한 김덕운옹은 우선, 그당시에 진도 섬 지방 주민들을 비롯해 도서지역 주민들의 생업에 필요했던 해초를 채취하는 어선을 만드는데 보유한 기술을 쏟아부었다.
김덕운옹이 활동할 당시에 함께했던 진도 조선장으로는 지산면 소포리의 임월판, 박봉선옹과 지산면 보전리의 서양빈옹, 지산면 와우리의 정금옥옹 등 이있었다.
이들은 숙련된 기술로 해초어선을 일주일에 한척씩 만들었다 한다.
그러니까 46년 이란 세월동안 일주일에 한척의 배를 만들었다니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배를 만든셈이다.
김덕운옹이 주로 만들었던 배는 3-4명의 인원이 해초작업을 할때 타던것과 진도와 목포를 왕래하는 승선인원 100명 가량의 종선도 만들었다.
아쉽게도 이들중 지금까지 지산면 보전에서 살고있는 김덕운옹과 현재 목포에서 거주하는 걸로 알려진 정금옥옹 만이 생존해 있을뿐 다른분은 작고하신걸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