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어느 바람 부는 날 저녁, 진도읍 진도수도관리단 1층에 있는 라 스또리아(La STORIA)에서 김순중 전 발행인을 만났다. 내가 카페에 들어섰을 때 그는 갓 볶은 원두커피향이 자욱하게 깔려 있는 카페 중앙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아메리카노를, 나는 카라멜마끼아또를 주문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물었다.
“신문 준비는 잘 돼 가요?”
“아직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와 나는 이 물음과 답을 지난 봄부터 반복했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만담(晩談)’이라는 걸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문
진도신문 발행·편집인으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죠? 96회까지 하셨으면 기왕 100회를 채우시는 게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클 것 같습니다.
답
네, 정확히는 97회까지 발행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든 일에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후회와 다릅니다. 후회는 우리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만 아쉬움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풀무질을 합니다.
지난날의 아쉬움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고 그것이 부족한 제가 새로운 꿈을 꾸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신문발행을 접으면서 수많은 아쉬움이 밀려듭니다. 그러나 신문발행을 접는 아쉬움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계획이 세워져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문
그러니까 10년 전, 신문을 발행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답
동기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당시 미숙한 저의 눈에 비춰지는 군정은 아쉬움이 많았고, 저는 그것을 바로 잡을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론을 시작했습니다. 언론을 기득권층으로 생각했고 기득권층에 들어가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였습니다.
문
언론 권력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지금 그 목적을 어느 정도 이뤘다고 자부하는지?
답
글쎄요. 나름대로 보람을 느낀 점도 없지 않지만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느냐고 물으신다면, 10여 년 동안 '객기'만 부리다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솔직히요! 언론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저의 자질이 부족했고,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섭외하지 못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로 생각됩니다.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목적을 위해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요.
문
신문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지점은?
답
지역을 바꾸는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 하는데 제가 느낀 보람은 지금 와서 생각하니 스스로 생각해도 의외로 다가옵니다.
신문이 발행되었다는 소식에 신문을 찾으러 다니던 독자들, 신문 발행에 보태라며 손에 3만원, 5만원을 쥐어 주시던 어르신들, 나도 진도신문을 보고 싶다며 구독신청을 해주시던 독자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결국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새로운 선택을 망설이게 만든 부분이 있다면, 바로 독자들께서 저에게 보내준 신뢰일 겁니다.
문
아, 그럼 그 새로운 일, 새로운 선택이라는 게 혹시?
답
네, 짐작이 맞습니다.
문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답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제부터는 알리는 일에서 벗어나 직접 고치는 일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지역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데 언론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우리 지역의 리더들은 “내가 나서서 깨끗한 정치와 행정을 하겠다”고 목청을 높입니다. 하지만 저는 누가 정치를 해도 ‘깨끗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진도군의회에는 제대로 된 회의록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동네 계에서도 주요 결정을 할 때 회의록을 만듭니다. 그런데 군정의 주요 결정을 하는 군의회에 제대로 된 회의록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문
정례회나 임시회 말고, 사전 협의회 말씀하시는 거죠?
답
네, 맞아요, 협의회! 거기서 중요한 결정은 다 내려지는 거니까요. 어떤 결정을 이끌어 내는데 어느 의원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없는 현 구도는 최소한 군민들에게 예의가 아닐뿐더러 밀실야합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바로 잡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것, 아니 이번에는 꼭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제가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입니다.
만약 저에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저는 스스로의 목에 방울을 다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리더는 스스로 떳떳해야 하고, 스스로 깨끗해야 합니다.
문
이제 자유로운 비판자에서 무방비로 비판받는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각오는 했겠지요?
답
난감한 질문이네요. 언론인으로서 공적 대상을 비판하는 일은 쉽지요. 그러나 비판을 받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는 일일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저를 비판한다면, 어떤 단체가 저를 비난한다면…… 저는 한동안 잠을 못 이룰 것 같습니다.
허나 정치인, 또는 공인이 되려고 한다는 것은 이런 부분까지 감내해야겠죠. 대신 비판 대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정치인이 여론의 지탄을 받는다면, 더 이상 그 길을 가면 안 되니까요. 물론 우리 정치 문화 자체가 아직 성숙단계에 있기 때문에 도매금으로 욕을 먹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제가 가고자 하는 길, 앞서 말씀드렸듯 스스로 떳떳할 수 있다면, 주민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다른 이들이 할 수 없었던 일을 과감하게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문
신문을 발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다면?
답
많지요. 벌써 머릿속에 기사 제목들이 둥둥 떠다니네요. 대부분이 폭로성 기사죠, 현존하는 인물에 대한 폭로성기사라 이 자리에서 언급하기는 부적절한 것 같아요, 하하. 그 외에는 진도군의 태양광사업에 대한 심층기사, 진도읍 가스공급에 대한 문제점을 파헤친 기사 등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습니다.
문
기억에 남는 독자도 많으시겠죠?
답
기억에 남는 독자분들을 다 말씀드리자면 지면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신문 발행을 도와주신 관내 업체 사장님, 향우분들 그리고 지나는 길에 신문 발행에 보태라며 3만원, 5만원을 손에 쥐어 주시던 어르신들 모두 기억에 생생하고 눈물 나게 고맙지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는 임회면 십일시에 사시는 이용준 어르신입니다.당신 죽기 전에 좋은 일에 쓰고 싶다며 100만 원을 보내 주신 분이죠.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뜻을 꺾지 못하고 귀하게 사용했었습니다. 당시 진도신문이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며 많이 반성했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기억이 납니다.
문
가벼운 질문 몇 가지 더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꿈이?
답
이상한 이야기지만 특별한 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밀리듯 살아왔습니다. 단, 자존심은 지키고 살자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꿈은 이제 생긴 거죠. 투명하고 공정하며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뒤늦게 찾아온 저의 꿈입니다. 너무 거창한 꿈일 수 있지만 꿈은 '셀프'이기에 뒤늦게 찾아온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볼 생각입니다. 요즘에는 진도읍내 거리를 걸어다닐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문
가족이야기를 잠깐 부탁드립니다.
답
참 꺼내기 힘든 이야기네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신 김용희씨와 평범한 주부이셨던 윤덕진씨의 6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세 분의 형님들이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부모님에 이어 몇 년 전 넷째 형님까지 세상을 떠나 현재는 2남1녀가 진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누님은 의신면 사천리에서 진도개를 기르시면서 진도개공연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진도개를 끔찍이 사랑해 요즘은 가끔 방송을 타는 유명인으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한 분 남아계시는 형님은 우리 동네 오바라는 닉네임으로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하셨던 분이고요.
문
둘레에 ‘벗’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그렇다면 ‘무소의 뿔’처럼 간다하더라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 같은데……
답
벗, 참으로 어감이 좋은 단어네요. 부족한 저에게는 분에 넘치는 좋은 벗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신문을 발행할 때도 든든한 응원군이자 지원군이었으며, 새로운 결심을 한 지금도 변치 않는 지원군들입니다.
그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저에게 “네가 정치를 하게 된다면 절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겠다. 필요한 지원을 할 테니 큰 꿈을 가지고 지역을 위해 깨끗한 정치를 해라”라고 말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이 벗들이고 벗들에 관해서는 제가 세계 최강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고령화된 진도 사회에서 세대의 중간에 있는 50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세대의 대표로서 진도 사회의 특성을 간단하게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답
너무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 하나의 보물도 제대로 갈고 닦지 못하는 지역. 관광 진도를 부르짖으면서 특색을 찾아 내지 못해 돈 되는 관광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 군민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부족하고 간접적인 비판이 난무하는 지역이랄까요.
너무 비관적인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바꾸어 말하면 좋은 지도자를 선출하여 군민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참신한 마인드를 수용하여 추진하면 어떤 지자체보다 발전 가능성이 큰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지도자의 역량과 사회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네요. 지금이 김순중 전 발행인의 삶에서 큰 전환점으로 보이는데 새로운 비전이 있다면?
답
산문을 발행하다 보니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할 수 있는 제안들을 진도군청 관계자들에게 전달도 해보았으나 검토조차 되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적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비의 바닷길의 경우 만남을 주제로 하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제안을 했죠. 사찰에서 기와 시주를 받는 것처럼 관광객들에게 기념 박석을 만들어 바닥에 설치하게 하면 자녀의 탄생을 축하하고 결혼을 기념하고 연인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도로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연과 만남을 주제로 하는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또 뽕할머니 사당 돌담을 소원성취 담으로 명명하고 수능합격, 자녀의 성공 등의 문구를 넣은 돌로 쌓으면 이 또한 명물이 됨은 물론 추억을 지닌 이들의 진도 재방문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진도의 자랑인 만장 역시 진도가 유배지인 점에 착안하여 유배 온 각 씨족들의 조상이 진도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스토리텔링하고, 축제가 열릴 때 각 종친회에 연락해 진도에 공적이 있는 조상들을 상여에 태우고 후손들이 그 뒤를 따르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더불어 씻김굿까지 병행한다면 특색 있고 돈 되는 관광자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 외에도 진도군에서는 실행하지 않는 많은 아이템이 있으나 다음에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아이고, 커피가 다 식겠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새 진도신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마음 편하게 말씀해 주기 바랍니다.
답
대안이 있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이웃의 소소한 생활을 공유 할 수 있는 신문 그러면서도 군정의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 신문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신문의 역할 중 하나는 다수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목소리에 소홀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신문은 결국 군민들의 지지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제가 언론인으로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새로운 진도신문이 해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진도신문 3면 ‘대서특필’은 앞으로 지역 인물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스스로 살아온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군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시거나 우리 지역의 인물로 추천하고 싶은 분이 계시면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직업이나 학력, 나이 등은 인물 소재와 관련이 없습니다. 3면 통면을 채울 수 있을 만한 스토리를 가진 분을 자천·추천해 주세요. poemey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