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장마에 바짝 목말랐던 논밭은 해갈이 되어 갑니다. 더불어 폭염 아래에서 고군분투하는 진도사람들의 마음 언저리에도 쉴 만한 평상 하나 놓이면 좋겠습니다.
언론인, 기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지난 날을 돌이켜봅니다. <진도신문>을 창간한 지 벌써 1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97호를 발행하는 동안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사건이 있어야 흥미 있는 기사를 실을 수 있는 게 신문의 특성이겠지요. 이런 사건만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하면서 지면을 채워나간 적도 많았고, 부정을 위해 숨겨진 사건들을 파헤치고 온 세상에 드러낸 적도 있었습니다.
신문을 만들면서 저는 항상 스스로 되물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어떤 때는 모든 걸 내려놓고 평범한 사업에 전념할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마음을 다잡고 신문을 발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제가 흔들릴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울림이 일었고, 저는 다시 기사를 써 나갔습니다.
초심불망 마부작침(初心不忘 磨斧作針)이라는 고사가 떠오릅니다. 당나라의 문장가였던 이백(李白)이 어린시절 상의산(象宜山) 스승 문하에 들어가 공부할 때였습니다. 자신의 재능이 특출났던 탓인지 이백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학문에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이 산중에 있어야 하지?’
이백은 하산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가 계곡을 건너갈 때였습니다. 한 노파가 바윗돌에 도끼를 갈고 있었습니다. 이백은 궁금해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왜 도끼를 가시는 겁니까?”
노파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대답했습니다.
“척 보면 모르나? 바늘 만들고 있는데.”
이백은 비꼬듯 다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큰 도끼를 바위에 간다해서 바늘이 될까요?”
그러자 노인은 이백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암, 되고 말고! 천년 바위가 모래가 되듯 이 도끼도 계속 갈다 보면, 바늘이 되지 않겠는가!”
이백은 한참 멍하니 서 있다 다시 스승이 있는 상의산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요즘 세상에 진짜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꾸준히 노력해 뜻을 이루라’는 가르침은 신문쟁이의 길을 걸어왔던 저에게도 커다란 채찍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신문을 처음 시작할 때 ‘나의 노력으로 우리 지역에 조그마한 변화가 온다면 내 삶에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비춰준다면, 그 빛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저는 이번 호를 끝으로 <진도신문> 발행인으로서의 소임을 놓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가 원했던 세상, 제가 완성하고 싶었던 삶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인 선택을 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뵙고자 합니다.
저는 <진도신문>을 떠나지만, 진도신문은 새로운 발행인을 만나 군민 여러분 곁을 지킬 것입니다.
그동안 <진도신문>에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신 군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미숙함으로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는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진심입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세월이었지만, 너무 과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가슴 깊이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