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근해 먼 바다에 떠있는 곽도(藿島)는 미역곽(藿)자를 써서 미역섬이라고도 하는데, 섬기행 시작부터 벼르고 벼르던 섬이었다. 이틀에 한번씩 들어오는 여객선도 인근 바다의 파도가 워낙 거칠기 때문에 웬만큼 좋은 날씨에도 걸핏하면 결항이기 쉽상인 섬이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 중 마침 며칠 째 펑펑 퍼붓던 눈이 주춤, 2~3일 바람과 강추위가 없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곽도에 들어간다는 후배 낚시꾼의 정보에 의해 염치 불고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오전 3시, 1세기를 넘게 살고 계시는 부친이 하루 종일 늦은 시간까지 드실 식사와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부친의 방안에 들여 놓고 집을 나서면서 외로운 섬 하나가 바로 1세기를 살고 계시는 부친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그렇더라도 새벽 5시 30분에 떠나는 낚싯배를 타기 위해 진도군 팽목항으로 향했다. 집을 나선 시간, 오전 4시 50분. 그것은 굳이 새벽이라 말할 수 없다. 칠흑의 밤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칠흑(漆黑)이라는 단어를 입안에 굴리면서 지프차의 엑셀레이터를 힘주어 밟았다.
팽목항에 도착하자 한 척의 배가 환히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큰 낚시 가방을 어깨에 맨 낚시꾼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무턱대고 배에 올라탔다. 낚시꾼들이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 새벽에 웬 여자?’ 하는 것이렸다. 그들은 나를 흘끔거릴 때 나는 그들의 머릿수를 셌다. 어림잡아 25명쯤이었다.
나는 선실 쪽으로 가서 선장을 찾았다. 후배 낚시꾼에게 미리 연락 받은 선장이 말했다.
“미역섬에 취재 가시는 분이지요? 왕복 4만원 되겠습니다.”
나 돈을 건네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다. 그는 1시간 10분 거리라고 말하며 선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선실을 기웃거렸다. 낚시 배에는 크고 작은 선실이 2개 있었는데 낚시꾼들이 이불을 덮고 죽~ 누워 있었다. 도저히 발붙일 틈이 없었고, 설령 틈이 있다하더라도 그들 속에 끼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난간 옆에 서있기로 했다.
“거긴 춥고 물이 튕기기 때문에 안돼요.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운전하는 선장의 뒤쪽에 앉아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 대신 미역섬을 지키고 있다는 할머니 3분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곽도의 미역은 거친 파도를 견디며 자란 최상의 자연산 미역으로서 한 가닥에 4~5만원을 홋가 한다는 것과 3분 할머니들이 그 미역 채취 때문에 곽도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과, 사철 낚시꾼의 왕국인 그 섬에서 재워주고 밥해주는 것으로 부수입을 짭짤히 올린다는 사전 정보를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세분 할머니들의 낚시꾼들을 향한 시샘이 대단하다는, 또는 어느 단골 낚시꾼을 좋아하여 노상 그 낚시꾼 기다림으로 살고 있음을 느낀다는 할머니의 떠 흐르는 소문에 귀가 솔깃,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터였다.
얼마쯤인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는데 미역섬이요! 하는 선장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고 서둘러 내릴 준비를 했다. 나를 포함 그 섬에서 7명이 내렸다.
가파른 갯바위에 내린 나는 바위를 기어올라 세분 할머니만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했고 낚시꾼들은 좋은 포인트를 찾아 갯바위를 타고 있었다.
핸드폰을 열어 여린 빛으로 길을 찾으며 산등성이를 올랐더니 섬 중앙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10여 채가 넘는 집들은 모두 빈집이었다.
그 중에 높은 돌담이 있는 집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집 안쪽으로 들어가며 주인을 찾았더니, 취재 차 올 것이라는 전화 연락을 받은 할머니가 어서 들어오라, 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마침 낚시를 가기 위해 라면으로 끼니를 떼 우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낚시만을 위하여 한 달 전에 안산에서 온 사람들로써 아들이 군대가기 직전인 터, 겨울 낚시를 겸한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거였다.
놀라워라! 감격스러워라!
“이따 저 서쪽 켠 갯바위로 오십시오. 감성돔 몇 마리 낚아 놓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만만한, 행복한 목소리로 말하며 돌담을 끼고 돌아 그들이 이미 장악한 포인트를 찾아 내려갔다.
나는 그때부터 주인 할머니 곁에 뽀짝거렸다. 고백컨대 미역섬에 들어 온 큰 목적은 먼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어쩌면 징하게 외로울 법한 세분 할머니들의 사는 모습을 단편으로 구상하고 있던 터였기에 무언가를 얻어내야 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할머니 세분만 사시니 가족 같으시겠네요?”
“가족은 멋이 가족이랑가. 각자 살제....”
“할머니 이 외딴 섬에서 살면 누가 젤 그리워요?”
“새끼덜도 그립고 죽은 남편도 그립고 또 있제만...”
머리를 빗으면서 혼잣소리로 말하는 할머니의 무엇 무엇을 알 것 같았다. 끈적하고 인간적인 단편 하나를 건질 것 같은 예감을 안고 부자유친을 찾아 갯바위로 내려갔다. 동녘에 이미 해가 올라섰다. 날이 흐린 탓에 원하는 일출은 아니었지만 외로운 섬에서 떠오른 해를 카메라에 담았다.
문득, 집에 두고 온 1세기를 넘게 살고 있는 아버지가 홀로, 섬인 듯 다가왔다.
천년의 외로움이 배어있는 미역의섬,
1세기의 외로움이 배어 있는 아버지의섬,
반세기를 넘어 외롭다, 외롭다 말하는 나의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