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 박광천은?
경기도 여주시 3호 도예명장인 박광천은 여주군 강천면(적금 1리)에서 태어났다. 문화재 화공 164호, 인도 이인호 선생의 제자로 사사를 받았다. 현재 여주 전원도예 연구소(여주시 어영실로 87 (천송동)를 운영 중으로 한국예술대제전 금상(1994년) 수상을 필두로 다수의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
도예 명장 단아 박광천 선생이 오는 3월22일 진도향토문화회관 2층 특별전시실에서 전시회를 연다.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한 전원도예연구소에서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잇기 위해 외길을 걷고 있는 박광천 명장의 이번 진도 전시회는 대한민국 유일의 민속예술특구이자 예향의 고장인 진도군에 작품을 전시해 보고 싶다는 본인의 뜻에 따라 진도의 지인들이 준비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 중 하나로 꼽히는 도자기는 중국과의 활발한 무역을 벌이던 9세기 경 신라시대부터 청자 제조기술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그 시작이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의 은은한 멋과 조선백자의 소박하고 맑은 세련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미로 꼽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늘날까지도 전통을 지키기 위해 여러 도예가들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유명한 곳 중 하나가 경기도 여주시다.
여주시는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는 고령토가 생산되는 지방으로 1990년부터 매년 도자기 축제를 진행하고 있을 만큼 역사가 깊은 고장이다.
박광천 도예명장은 여주시 선정 제3대 도예명장으로 40년 도예 외길을 걸으며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조상들의 숨결이 숨 쉬는 전통적인 맥을 잇다>
박광천 명장이 만드는 작품들은 첫 공정에서 마무리까지 모든 단계가 수공으로 제작되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도예작업장이 자동화, 기계화로 표준화 된 자기를 만들어 내는 것과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는 수작업만이 작품에 진정한 혼을 넣을 수 있고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박광천 명장의 고집스런 신념 때문이다.
특히 우리 것,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숨 쉬는 전통적인 맥을 잇는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그의 작품들은 박명장의 작가로서의 진실성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단호하기까지 하다.
단아 박광천 선생은 100개의 작품에서 단 한 점의 작품을 건지기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99개의 작품을 망치로 깨버리는 도공의 고집스런 면모도 보인다.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흠잡을 데가 없다 하더라도 도공의 혼이 스며있지 않으면 그 작품은 불가마를 나오는 순간 생명을 다한다.
단아 박광천 선생은 “도자기에 제일 중요한 핵심 요소는 질 좋은 흙이다”며 “흙과 물 그리고 불의 오묘한 조화 속에 도공의 숨결 따라 혼을 불사르면 색다른 흙의 세계가 펼쳐지는 종합예술품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손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작품들은 하나같이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듯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많은 사람들이 도자기에 대해 ‘전통의 예술’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도자기를 만드는 이른바 ‘장인’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며 계승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국내에서 유통되는 도자기들도 대부분 대량생산유통 과정을 거치는 염가의 제품들로 독립적인 미를 상실하고 있다는 평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도자기의 도시’ 여주시 제3대 명장으로 꼽힌 박광천 명장은 도자기 제작에 대한 굽히지 않는 신념으로 모든 공정과정을 직접 수공으로 만드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전통과 현대를 담은 시공의 역작을 빚다>
박광천 명장은 산화동을 이용해 그릇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진사’기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마 속의 불꽃의 에너지를 형상화 한 일련의 작품들이 특히 인상적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박명장의 작품 중 단연 좌중의 눈길을 끄는 것은 붉은 빛이 도는 두 개의 도자기에 불꽃으로 새겨진 무늬가 배치된 진사쌍호 ‘쌍태동’이다.
생명의 태동하는 에너지와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쌍태동’은 마치 태아와도 같은 모습을 보이며 보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상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광천 명장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도자기를 대중화시키기 위한 노력에도 열성을 쏟고 있다.
자신만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창출한 ‘도자기 분수대’ 작품이 크게 어필되면서 일명 ‘분수대 도예가’라는 애칭이 붙었을 정도다.
‘도자기 분수대’의 경우 10여 년 전 의장특허등록을 마쳤을 정도로 단순한 관상용의 차원을 떠나 일반 가정의 거실에서 실내 가습기 역할도 겸하기에 국내 도자기 애호가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선호하고 있는 야심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국내 최초로 겨울철에는 적당한 습도로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장치를 부착했기에 그야말로 도자기 대중화를 위한 히트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독특한 스타일의 골프채 함 역시 박광천 명장의 아이디어가 빛난 작품으로 알려졌다.
박광천 명장의 아이디어 작품 골프채 함은 겉 표면에 산수화, 사군자 및 문인화를 입혔다.
전체적인 형상에 있어 남들이 비슷하게 흉내 낼 수는 있지만 다양한 그림 솜씨는 박광천 명장만의 특기이다.
그는 이밖에도 20여종의 작품을 역시 자신만의 창의적인 기법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박명장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상감철화화장토 투계, 청화백자 투계, 상감철화화장토 백호민화도용춤, 상감철화화장토 십장생, 상감철화화장토 취매도, 백화청화 연문도, 백자투계용춤, 백자청화 달마호랑이 등으로 작품에는 박명장의 힘찬 붓놀림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 한 민화들이 그려져 있다.
특히 상감철화화장토는 박명장이 수 십 년간 연구해온 소지와 유약을 동시에 사용하여 비색청자와 분청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오묘함과 백자, 청자 분청을 한 작품에서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오로지 박명장만이 빚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도자기 장르를 개척한 전통과 현대를 담은 시공의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도 여주 강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광천 명장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많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인천에 있는 동양화 학원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던 그는 1975년 고암도예에 화공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기초적인 도예 기법을 익힌 후 1979년 말 고향인 여주로 돌아와 해동도예에서 이인호 선생의 사사로 화공으로 10년간 활동했으며 이후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고자 전원도예연구소를 설립,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쳐왔다.
단아 박광천 선생은 인생이 무엇인지의 화두에 있어 가마 속의 불꽃과 비교하면서 불의 조화에 있어 갖가지 오묘한 현상을 발하듯 우리네 인생역정도 갖가지 시련과 환희가 교차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말로 비유했다.
다시 말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꺼지게 마련이고 아무리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도 시들기 마련이기에 평소에 타고난 재능대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지혜롭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박광천 선생은 제12회 신미술대전 대상, 제13회 한국예술대제전 종합대상, 뉴질랜드의회 초대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여주군 선정 제3대 도예명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