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며칠 동안 쉬엄쉬엄 비 내리다, 잠깐 멈추어 바람 불다가 반복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피하지 않고 내리는 비 맞이하고, 불어오는 바람 맞이하여 그대로 흔들리는데 피하고 가리는 건 우리 사람들뿐이다..
거리마다에 우산들 형형색색 예쁘기도 하다.
선명한 원색부터 부드러운 파스텔톤색까지...
또르르 구르는 빗방울과 어우러 수채화를 그린다.
어디 우산뿐이랴 패션 장화에, 우의에...
변화무쌍한 날씨만큼이나 빠르게 넘치게 비오는 날의 주인공들이 채워진다.
세차게 비바람 치더니 숨고르기 하듯 잠깐 멈춘 잿빛하늘아래 여기저기 철퍼덕하니 내 팽개쳐진 우산들이 눈에 띈다.
비오는날 거리의 쓰레기통, 빌딩 앞 구석진 자리...
지천이 버려진 우산들이다.
하늘색 물방울모양의 우산이 시선을 끌며 귓전에 들리는 듯 한 인자한 목소리 "아이구 이놈은 이쁜공주 몫이네”.
몇 년 전만해도 동네 할아버지 한분이 비맞아가며 버려진 우산들 다 수거해 부러진 살 바꾸고 펴서 말끔하게 손질해 동네보육원에 갖다 주시곤 했는데...
어느 날 부터 뵐 수가 없었다.
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편하셔서 자식집으로 가셨다는 후문만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보육원 여자아이는 다 공주요 남자아이는 모두가 왕자였다.
젊은 우리들 감히 따라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선행에 얼굴 붉혀지는 일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비온 후 버려진 우산만 보면 자연스레 그분을 떠올리게 된다.
" 바람 한 번에 방금 산 우산이 망가졌어".
"커피점에 우산 놓고 왔네?"
그 말 한마디로 끝이다.
찾으러 갈 생각도 고쳐볼 생각도 없는 것이다.
넘치도록 많아 잊고 온 우산 찾는 일도 없고 버리는 일도 너무 쉬우니 물질만능시대에 살아가고 있는게 맞긴 맞다.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라며 지나온 시절 가장 깊게 생각한다는 중년에 접어든 지금, 학창시절의 비오는 날을 가장 아픈 기억으로 간직하는 이가 있다.
너무 가난한 시절 형제자매 많아 비가 오는 날은 서로 우산차지 하느라 전쟁터 같았단다
우산이 없어서 십리 길의 학교를 결석하는 일도 많았다며, 차라리 학교 가는 도중 비를 만나면 괜찮았는데 아침 일찍부터 오는 비는 대책이 없었다고...
그래서 그분은 우산 빌려줌에 가장 후하다. 빌려가서 다시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누구나 다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우리 모두에게도 조금은 같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을 듯하다.
아주 망가져서 버려지는 거야 할 수 없지만, 비 가려줌에 가장 성실했던 우산의 고마움이 버려진 우산에서 상처를 어루만지듯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