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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1년01월17일 00시00분 ]

지난해 11월 20일 밤, 매정마을 앞에서는 중장비 소음과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뒤섞여 어둠속에 충혈되고 있었다. 11월초부터 계속된 살풍경이었다. 송전선로 매설 공사를 맡은 업체는 철야공사를 벌이려했고, 마을 주민들은 혹독한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날도 어김없이 마을 주민들은 현장에 나와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불법 공사 그만 두시오! 평생 살아온 마을인데 왜 우리를 쫓아내려고 하는 거요?”
마을 사람들은 이제는 얼굴이 낯익은 업체 관계자들에게 사정도 해 보고 버럭 화도 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는 도로를 파헤치는 굴삭기 삽날에 조각나 폐석들과 함께 덤프에 실려 갈 뿐이었다.

대부분 칠순 노인인 주민들도 하나둘 지쳐가고 있었다. 힘이 풀린 노인들은 길섶에 앉아 굴삭기가 파놓은 구덩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1시쯤, 육중한 중장비 사이로 지팡이를 짚은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노인에게 달려갔다.

“아짐, 위험하요, 일루 오소!”
그러나 말릴 사이도 없이 노인은 초고압선을 매설하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인부들이 달려들자 노인은 가느다란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가라, 이놈들아! 나는 오늘 죽으려고 왔으니 나를 묻고 공사해라!”
순간, 세상은 정전이 된 듯 조용해졌다. 굴삭기는 더 이상 땅을 파지 못했다. 대책위 젊은이들이 부축해 나올 때까지 노인은 구덩이를 지키고 있었다. 공사는 그렇게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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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몰아치던 1월초 매정마을 회관을 찾아가니 10여 명의 주민들이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기자가 당시 공사를 중단시켰던 분이 계신지 묻자 주민들은 단박에 백발 성성한 노인을 가리켰다. 기자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자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하양심(82)씨는 가까이 다가서며 이야기 타래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랬제. 나는 그날 처음 나갔어. 여그 동상들은 날마다 나가서 새벽까정 싸웠는데 나는 다리가 아프고 몸이 너무 불편해서 못 나갔어. 그래서 맨날 미안했는데, 그날은 참을 수가 없더라고. 그동안 밤마다 공사 벌이는 소리에 밤잠도 못 자고 속이 울렁거려서 죽을 것 같았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인께 죽더라도 저놈들한테 한풀이라도 하고 죽고 싶었어. 아니, 왜 조용하던 동네를 이렇게 못 살게 만든단가?”

하양심씨가 한땀 쉬어갈 때마다 곁에 있던 아짐들이 돌아가며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그랑께 이게 뭔 일이여. 동란도 겪어봤지만 여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저 팔십 노인까지 말려 죽일려고 말이제.”
“그려, 나쁜놈들…….”
“여기가 왜 매정리인 줄 안가? 매화나무 옆에 정자를 지었다고 해서 매정이여. 조상들 대대로 보전해온 이쁜 마을인디 누가 내줄라고 하것는가?”

하양심씨는 숨을 몰아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작년에 남편이 죽고 나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나 하나 죽으면 저놈들이 공사를 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뿐이야. 또 공사를 시작하면 또 나가야지. 설날에 자식들이 오면 말리겠지만 어쩔 수가 없어.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오라고 해도 나는 가지 않을랑께. 여기서 살다 죽어야제. 내가 가진 것은 지팡이 하나 밖에 없어도 허깨비가 잡아가기 전에는 정신은 살아있을 거여. 저놈들이 또 파면 거기가 내 무덤이랑께.”
 
기자가 고소당한 사실을 아냐고 묻자 하양심씨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제. 그런다고 내가 무서운 게 있겠는가? 여그 사람들도 그렇고. 누가 우리한테 벌금 물린다고 하는디 말이여, 우리는 날씨가 이렇게 추워도 연탄 한 장 아까워서 못 때는데 그런 돈이 어디 있어. 우리더러 죽으라는 소리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양심씨는 물론 노인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공사를 막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초고압 송전선로가 가져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노인들의 표정에 그늘져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한 노인이 물었다. 

“군수나 군의원들이나 선거 때는 와서 편하게 살게 해 주겠다고 서로 난리더니 지금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네. 군수가 주민들 싸우는 현장에 한 번이라도 나왔는가? 군수가 여기 건설소장과 친구라고 하던데 사실이단가?”
주민들은 선거 이후 한 번도 ‘전쟁터’에 찾아오지 않은 이동진 군수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한편, 송전선로 매설 공사를 시공하고 있는 (주)한백은 지난해 12월 29일, 하양심씨 등 매정마을 주민들을 포함한 29명을 공사방해 이유로 진도경찰서에 형사고소하고, 별도로 19명에 대해서 손해배상(1억여 원)을 청구했다. 또한 이들에게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위반 때마다 1백만 원을 배상하도록 하는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매정 이장 이경석씨는 “한마디로 우리한테 마을을 떠나라는 말이다. 우리 마을은 45가구가 살고 있는데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한전에서는 몸이 불편한 노인들만 살아가는 마을에서 불법공사를 벌이고 있다. 노인들은 공사기간 동안 단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설사 공사가 끝난다 하더라도 전자파와 송전선로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고통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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