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골산 쌀굴 전설을 소재로 둔전리 친환경 쌀
영산 금골산 아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힘을 합치면 금골미의 탄생은 결코 꿈이 아닐 거라 믿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고 건강하며 귀하디귀한 쌀 ‘금골미’가 쌀굴 안에 잠들어 있다. 함께 쌀굴을 찾아 떠나 봅시다!
‘스토리텔링 효과 - 기막힌 스토리가 기막힌 상품을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쌀은 여전히 식량 주권을 지키는 버팀목이지만 과잉 생산과 수입으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곡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다 쌀이 보리나 콩처럼 겨우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면 농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쌀을 먹어야 살 수 있고, 우리 농민들이 우리 땅에서 생산한 쌀로 밥을 지어야 밥맛이 구수하게 살아있다. 밥이 빵으로 대체되지 않는 이상 농민과 소비자들의 우리 쌀 품앗이는 계속될 것이다.
자치단체와 농민들은 자기 지역에서 생산하는 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앞다퉈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진도에서는 대표적으로 ‘해지연’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쌀과 ‘아리랑 쌀’, ‘오색미’ 등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브랜드는 ‘상표’라는 의미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스토리가 없다. 스토리는 어떤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스토리의 힘이 강할수록 그 대상의 존재 가치도 올라간다.
고전과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금골산 쌀굴 전설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재물에 욕심을 부릴 때는 반드시 화가 미친다는 교훈을 품고 있다. 그 재물이 우리네의 주요 식량인 쌀이기에 농민들과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이야기로 다가설 수 있다.
첫째, 둔전과 신동 둘레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쌀의 이미지를 ‘보물’, ‘특별한 쌀’, ‘금쌀’ 등으로 고급화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진도에서 가장 일찍 무농약 쌀을 생산하면서도 특별한 브랜드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쌀굴 전설을 모티브로 스토리와 대표 브랜드를 만든다면 무농약 생산기술과 품질에 날개를 달 것이다.
둘째, 금골미의 스토리에는 ‘정량’과 ‘무욕’이라는 엑기스가 있는데 건강과 품격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식생활 패턴과 맞아떨어진다.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고려시대의 쌀굴이 광고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금골산 자연․문화 유적을 중심으로 ‘쌀굴 축제’를 기획할 수 있다. 금골산 아래 금성초교에는 보물 제529호 오층 석탑이 있고, 마애여래좌상인 미륵불도 전남 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어 있다. 게르마늄 지대인 둔전의 들녘과 돌팍재의 떡흙도 흥미로운 소재가 될 것이다.
□ ‘금골미’ 브랜드 가치 창조 단계
→ 금골미 영농사업단 구성
→ 전량 수매 및 정미·포장 : 차별화, 고급화
→ 금골산 쌀굴 축제 개최 및 홍보 : 군내면 최대 축제로 발전
→ 금골산 아래로 면사무소 이전 : 명실상부한 군내면 중심지로 발전
「금골산 쌀굴 전설」
* 원전 <진도군지> <옥주의 얼> <금골산록> <한국구비문학대계> 등을 바탕으로 육하원칙에 맞게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금골산(金骨山)은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있는 바위산이다. 개골산․상골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높이가 135미터로 낮은 산이지만 진도의 금강이라 불릴 만큼 산세가 오묘하다.
이 산 아래에는 해원사(海院寺)라는 큰 절이 있었다. 산 절벽에는 스님들이 수도하는 굴(窟)들이 있었는데 위치에 따라 서굴, 상굴, 동굴이라 불렸다. 산의 서쪽에 있는 서굴은 일행(一行)이라는 스님이 향나무로 16나한의 소상을 만들어 굴에 안치했고, 그 굴 곁에 고찰 67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바위비탈을 미끄러지듯 돌아 내려가면 오목한 터가 나오는데 그곳이 상굴이다. 서거정의 <金骨山錄>이라는 기행문을 보면 ‘북쪽 바위로 두어 걸음 나가면 또 마루턱 비탈을 파서 허공이 베개를 매 놓았다’고 표현할 만큼 스님들이 수행하던 상굴은 까마득한 절벽에 있다. 정상에서 산 왼쪽 어깻죽지를 지나 쇠골을 타고 절벽을 산책하다 보면 너른 동굴이 나온다. 그 가슴팍에 마애불이 들어앉아 있다.
천년 참선에도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마애불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이 굴에 작은 암자가 있었고 노승과 상좌가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다른 스님들처럼 동냥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다. 굴 석벽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을 긁으면 날마다 두 사람이 먹을 만큼 쌀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는 저녁 무렵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해묵은 덕담을 우려낸 차를 마시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노승은 상좌에게 일렀다.
“어두워서 손님들이 아래 요사채로 내려갈 수 없으니 서둘러 저녁밥을 짓도록 하거라.”
그러자 상좌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님, 쌀이 이인분 밖에 없는데 어떡할까요?”
그때서야 노승은 사태를 깨달았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굶게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밤중에 쌀을 구하기 위해 상좌를 절벽으로 내려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 고심하던 노승이 상좌에게 말했다.
“얘야, 구멍을 다시 긁어 보거라.”
상좌는 멈칫했다.
“스님…… 스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결코 정량 이상은 받을 수 없으니 아무리 쌀이 필요한 일이 생기더라도 욕심을 내지 말라고요. 저는 두렵습니다!”
노승도 예로부터 금기시되어 온 ‘쌀굴’의 비밀이 마음에 거슬렸지만 손님들의 허기진 표정을 쉬이 물리칠 수가 없었다.
“스님, 제가 굶겠습니다!”하며 상좌가 손사래를 쳤지만 노승의 손에는 벌써 당그레가 들려 있었다. 노승은 화를 내며 당그레로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이놈의 구멍은 인정사정도 없더란 말이냐?”
하지만 노승이 아무리 당그레질을 해도 쌀은 한 톨도 나오지 않았고 구멍만 더 깊이 패일 뿐이었다. 노승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당그레를 절벽 아래로 내던지고 말았다. 밤새 어둠속에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설익은 염불만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날부터 쌀굴에서는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 노승과 상좌도 짐을 정리하고 굴을 떠나버렸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굴 북벽에는 마애불이 남겨져 있었다. 마애불 가슴과 배꼽 사이에 그 쌀굴이 있다. 쌀굴에 손을 넣어보면 아직도 쌀겨가 묻어나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