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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0년04월26일 00시00분 ]

민주당 진도군수 후보 1차 경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양인섭 전 군수는 다음날 음료수 25박스를 차량에 실었다.

그는 아들과 함께 6.2지방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자들의 사무실을 방문, 선전을 당부했다.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자 꿈인 진도군수 선거의 경선에서 탈락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는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1939년 군내면 상가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양인섭 전 군수는 초등학교 졸업 후, 목포에서의 상목점원생활 3년 동안 책가방 메고 학교 가는 학생들을 보며 학교에 가고 싶은 열망에 못 이겨 고향에 돌아와 점원생활 3년 동안 번 돈으로 진도서중학교에 입학했고 후에 고등학교에도 진학했다.

신문배달과 학용품팔이 등의 6년간의 고학 끝에 1961년 진도농업고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했고 군에 입대했다. 전방근무와 1군사령부장군수행원으로 근무하다 만기 제대한 후 고향에 돌아와 마이크로버스 업무과장, 광주여객 진도영업소장을 거쳐 남진건재에서 사원으로 일했다. 

남다른 성실함과 성공에의 열정으로 그는 1970년 (주)희망산업을 창업하게 된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1980년 진도청년회의소의 회장에 취임, 청년리더로서 새로운 꿈을 키우게 된다.

이후 진도중, 고등학교 육성회장, 진도군체육회 부회장, 바르게살기 진도군협의회장, 범죄예방위원 진도지구협의회장 등을 거치며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양인섭은 지방자치시대가 도래하자 고향 진도를 위해 정치인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진도발전을 위한 신화창조>

1991년 양인섭은 제 1대 진도군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사업에 이어 정치인으로서 성공시대를 열어나간다.

군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1대 군의원에 당선된 양인섭은 군민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과 돈이 없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신의 삶을 고향 후배들에게 대물림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1993년 (재)인선장학회를 설립하게 된다.

이런 양인섭의 고향 사랑은 군민들의 귀감이 되었고 그의 진도사랑을 익히 알고 있는 군민들은 1995년 또 한 번의 압도적인 지지로 그를 제 2대 군의원으로 선출했다.

제 2대 진도군 의회 상·하반기 의장을 지낸 양인섭은 평소 자신이 구상했던 잘사는 진도건설을 위해 또 한 번의 도전을 시작한다.

1996년 그는 진도군수선거에 출마, 현직인 박승만 군수와의 대결에서 석패하고 만다.

사업인으로서 성공, 정치인으로서의 승승장구하던 그의 패배는 충격이었으나 이미 바닥에서 시작해 정상의 문턱에 오른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구상하는 진도건설을 위해 힘든 도전을 계속 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호남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과 전남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 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으며 (사)해진포럼 정책위원장, 전남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등을 지내면서 사회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집념과 꿈을 향한 도전 정신은 결국 2002년 제 43대 진도군수 당선이라는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좌절..그리고 또 한 번의 도전>

그러나 그토록 고향 진도를 잘사는 군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했던 그의 꿈은 민주당 경선과정의 잡음으로 좌절되고 그는 1년 2개월간의 군수생활을 마치고 준비된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야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양인섭의 꿈은 식지 않고 계속 되었고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지속적인 장학 사업은 물론 진도를 위한 일들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7년을 지속해온 인선장학회의 장학 사업은 대학생 147명 등 741명에게 2억8천2백8십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고 그러한 지역사랑의 발로로 1993년 진도군민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진도군민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걱정말고 공부해라. 진도를 위해 큰일해라.”는 양인섭의 정신은 그가 얼마나 진도를 사랑했고 후배들을 사랑했는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큰 어른 양인섭, 아름다운 퇴장>

그가 가진 꿈, 그가 만들고 싶은 진도, 그가 펼치고 싶었던 정치는 이제 그의 열정과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만을 군민들에게 남겨둔 채 실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사랑하는 고향을 위해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위해 어떤 정치를 펼쳤을지 이제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분명 영원한 진도인이고 진도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진도를 사랑할 큰 어른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토록 그라 이루고 싶어했던 꿈이 군민들의 선택이 아닌 그가 평생을 헌신한 당의 선택이었음이 서운하고 서러울 만도 하지만 툴툴 털고 음료수 박스를 차에 실은 양인섭 전군수, “이제 할 일도 없고 시간도 많으니 마누라와 함께 그동안 양인섭이를 사랑한 군민들에게 사탕이라도 하나 나누어 주며 고맙다는 말이라도 전해야겠다.”며 “이제 선거법에 저촉될 일이 없으니 밭에서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마음 놓고 음료수라도 건내며 고맙단 말을 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말하는 양인섭 전 군수.

그의 진도사랑의 꿈이 진도발전을 향한 열망이 또 다른 양인섭에 의해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한없는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김순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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