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월가리 주민들이 세웠던 ‘이씨보’ 비가 복원된다.
군내면사무소(면장:이문교)는 효심이 깊은 두 아들을 기리기 위해 당시 월가리 주민들이 비를 세웠으나 1974년경 경지 정리 때 매몰 되었는데 2009년 11월 논 가운데에서 ‘이씨보’와 ‘난하교’ 라는 여섯 글자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비를 발견, 비를 다시 복원하여 옛 자리에 다시 세우기로 했다.
이에 비문과 안내문을 전, 문화원장 박병훈씨가 문안을 잡아 ‘이씨보’ 비 제작에 나섰다.
군내면에 복원될 ‘이씨보’ 비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월가리에 살던 이씨가문에 청춘과부가 아이들을 고이 기르며 수절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는 청춘세월을 어찌 하지 못해 이 과부는 하는 수 없이 떡절이(덕병리)에 사는 한 남자를 만나고 정을 나누게 되었는데 추야장 긴긴 밤에 잊을 길이 없어 성장한 아이들이 잠든 잠자리를 가만히 빠져나와 시냇가를 건너 10리가 넘는 산길을 오가게 되었고 젖은 버선을 말려 놓고는 함께 자는 척을 하였는데 이 일이 거듭되자 두 아들은 버선이 젖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안타까이 여긴 두 형제는 합심하여 어머니 몰래 돌을 가져다 “보”를 막고 흙을 날라 길을 만들어 드리니 그 후로는 엄동설한에도 어머니의 버선이 물에 젖지 않았다.
훗날 이 보의 연유를 알게 된 마을사람들은 이 형제의 갸륵한 효성을 기리기 위해 돌을 깍아 ‘이씨보’라 새겨 천추에 길이 남기고저 하였다.
이 같은 비의 내력은 진도군지(1976), 월가향지(1983), 진도향교지(1988)에 기록으로 전하여 오고 있다.
이 같은 유래를 바탕으로 향전 박병훈 선생은 다음과 같은 비문을 지었다.
이 비는 옛날 홀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했던 두 이씨형제를 기려 월가리 마을 주민들이 세운 비다.
홀어머니가 청춘시절을 이기지 못하고 밤중에 자식들 몰래 10리길인 떡절이(덕병리)까지 외도를 하면서 이곳 시내를 건너느라 버선이 늘 물에 젖어 왔다.
뒤늦게 이를 안 자식들, 그러나 자식 된 도리로서 할 말이 있을소냐.
안타까이 여긴 두 형제는 어머니 몰래 돌을 가져다 보를 막고 흙을 날라 길을 놓아주니 엄동설한에도 어머니의 버선이 물에 젖지 않았다.
이 비는 1974년 경지 정리때 매몰이 되었는데 2009년 11월 발굴이 되었다.
그러나 비문이 마멸되어 ‘이씨보’와 ‘난하교’라는 여섯 글자만 겨우 알아볼 수가 있다.
이에 비를 다시 만들어 이 비와 함께 옛 자리에 이 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