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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09년11월30일 00시00분 ]

무려 28년, 진도 조작 간첩 사건의 주인공 박동운(64)씨가 마침내 무죄판결을 받았다.

박씨는 서울 고법 재심 최후진술을 통해 “감옥살이를 하던 중 우연히 헌법 제12조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문을 봤다”며 “그 놀랍고도 훌륭한 문장을 28년 전 무기징역을 선고 했던 판사와 검사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박씨는 “헌법은 분명히 고문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데 우리는 고문을 당하여 간첩이 되고 말았다”며 “우리가 헌법을 위반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 가족이 이 나라 국민이 아니었는지를 이제는 판사님이 답해줘야 한다”고 그간의 참담한 심정을 되물었다.

무죄판결을 받은 후 박씨는 가장먼저 어머니 에게 달려가 “어머니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무죄라 합니다”라고 외쳤지만 이미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는 정신을 놓은 상태라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다.

독립영화 ‘무죄’로 널리 알려진 진도간첩단 사건의 주인공 박동운씨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박씨가 36살 때였던 1981년, 당시 국가 안전기획부는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되었다가 북에서 내려온 아버지를 따라 2번이나 북한에 다녀오는 등 24년간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진도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

당시 안기부는 진도농협 예금 계장으로 근무하던 박씨와 박씨 어머니(85, 이수례), 남동생(62), 작은아버지(76, 98년 사망)부부, 고모(68)부부, 등 6명에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박씨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8년을 복역하다 98년 가석방 되었고 어머니는 4년, 동생은 3년6개월, 작은 아버지 역시 7년의 옥살이를 했다.

박씨는 “5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만난 적도 없다”며 “안기부의 발표대로 라면 내가 12살 때부터 간첩 생활을 했다는 것인데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28년 전, 박씨 일가족은 영문도 모르고 남산 지하실로 끌려가 그날 새벽부터 63일간 온갖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오랫동안 “간첩이 아니다”고 버텼으나  몽둥이 타작에 짐승처럼 울부짖다 허위 자백을 했다.

더구나 만삭인 아내를 불러 고문하겠다는 협박에 모든 것을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수년간 억울하고 한 많은 옥살이를 하다가 한명, 한명 풀려났으나 이미 가족은 풍비박산이 나 버렸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혀 당국의 감시는 계속 되었고 주민들로부터 돌팔매질까지 당했다.

어머니는 절에 들어가 버렸고 작은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과 화병에 시달리다 11년 전 숨을 거뒀다.

박씨 역시 아내와 이혼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양봉을 치며 홀로 살아 왔다.

그러나 박씨는 이 억울함을 모두 용서하겠다고 밝혔다.

안기부 수사관들, 검사들, 옷을 벗고 고문상처를 확인해 달라고 호소했으나 오히려 나무라던 판사들의 이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나 그들을 용서 하겠다고 말한다.

단, “국가가 저지른 반 인권적 범죄는 해결 되어야 한다” 고 힘주어 말했다.

간첩 누명은 벗었으나 박씨의 찢겨진 삶은 무엇으로 보상될 수 있을 것인가.

누명은 벗었으나 여전히 아픔을 간직한 박씨의 삶을 치유할 방법은 없을 것이나, 국가의 잘못이 하찮은 보상으로 덮어질 수는 없을 것이나 국가의 부당한 행위로 인해 처참히 찢겨진 박씨 일가의 삶을 국가는 당연히 보상해야 할 것이다.

/김순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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