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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08년08월19일 00시00분 ]

진도가 동학농민군이 최후항쟁 끝에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역사적인 장소로 알려지면서 ‘동학농민혁명 역사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1860년 수운 최재우에 의해 경상남도 경주에서 창도된 동학은 그 사상과 조직을 기반으로 1892년10월부터 1895년1월까지 조선전역을 무대로 집단적, 공개적으로 전개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결코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회적사건이 아니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사에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적이며 1년 이상의 장기전으로 이어진 혁명은 조선후기 빈번히 발생했던 수많은 민란의 연장선 위에서 종래의 민란을 집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그 사상적 조직적 배경에는 조선후기이래 밑으로부터 표출되어 있던 민중들의 변혁의지를 수용하여 체계화한 동학이라는 새로운 사상과 동학의 표집조직이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동학난, 동학당의난, 동학농민운동 등으로 불러져 그 역사적의미가 올바르게 평가 받지 못하였으나 1994년 국내외에서 많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됨에 따라 그 혁명적 의미가 널리 들어나게 되었고 지난 2004년2월에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 되어 동년 9월6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로인해 동학농민혁명이 지닌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동학농민혁명이 보여준 반봉건 근대화와 반외세 자주화의 정신을 널리 드러내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 되고 있다.

진도군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조도출신 농민군 지도자 박중진을 비롯한 다수의 지도자들이 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여 집강소를 통한 폐정개혁을 수행한 곳이다.

특히 진도군은 동학농민혁명의 최후단계인 1894년12월말 공주 우금티 전투와 장흥 석대들 전투 등에서 대패한 농민군들이 진도로 집결하여 최후 항쟁 끝에 장렬한 최후를 맞은 역사적장소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1995년7월26일에는 진도출신 동학농민군 유골이 훗카이도대학 문학부 후루카와 강당에서 발견됨으로서 진도의 동학농민혁명은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이르렀다.

이에 진도에서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정확하게 복원할 필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진도군은 동학농민혁명군이 최후를 맞이한 역사적, 민족적지역인 진도의 역사적 의미의 중요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도군이 전통문화와 관광명소개발로 시각을 고정시키는 것보다 진도의 역사적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정진하는 자세가 관광 진도로의 도약에도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즉, 진도의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의 정확한 고증과 진도출신 동학농민군 및 지도자 유골 봉환을 위한 연구, 진도 동학농민혁명 역사공원 및 전시관을 조성하는 등 대대적인 노력과 동시에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역사적 중요자료를 취합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동학농민혁명군이 최후를 맞이한 진도군의 역사를 관광자원화 해야 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의 항쟁지 진도군의 역사적 조명작업이 결실을 맺는다면 관광 진도자원화는 물론 진도군민 모두의 가슴에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박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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