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대망의 진도공설운동장이 준공된 후 각종 운동경기가 연일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다음 글은 공설운동장 준공을 계기로 밝혀지지 않은 옛날 진도군 체육사 기록들을 찾아 연대순으로 정리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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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추석 각 마을 씨름대회>
조선시대 진도군의 체육에 관한 기록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1896년 무정 정만조(1858-1936)의 ‘은파유필’이라는 시집 중에 “추석날 각 마을마다 볏단을 깔아 놓고 짝을 지어 씨름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921년 진도보통학교 대운동회>
동교와 심상학교, 임회공립학교 및 해남 우수영 공립보통학교 생도가 연합하여 춘계 대운동회를 5월22일 개최하여 큰 성황을 이루었는데 고군면 거주 전 군청참사(현, 군의원)김형우씨가 4개 처의 생도 500여명의 한 끼 식사비로 70원을 기부 하였다 한다(동아일보 6월8일자).
<1921년, 우수영팀과 진도팀 정구경기>
해남우수영 정구단과 진도 정구단이 지난21일 진도보통학교에서 정구시합을 가졌는데 대전결과 진도팀이 7:3으로 우승 하였다고 한다(조선일보 8월3일자).
<1926년, 진도군 체육회 창립>
진도군 체육회가 창립 되었는데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 박종주, 부회장 한영교, 서기 김봉문(조선일보 8월1일자).
<1930년 진도씨름대회>
추석절을 맞이하여 제1회 진도씨름대회가 해창 간척지 광장에서 개최 되었는데 전적은 각 면에서 선출된 40명 선수 중 진도읍 박병진이 장사를 차지하였다(조선일보 10월18일자).
<1931년 진도유치원 어린이날 대회>
진도 유치원은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든 희망은 어린이 에게”라는 표어 아래 수 천매의 선전삐라를 살포하는 동시 500여명의 아동과 수 천군민이 웅장한 악대와 청홍 찬란한 깃발을 앞세우고 진도 시가지를 일주한 후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조선일보 5월1일자).
<1935년 호남축구대회 진도에서 개최>
호남축구대회가 진도에서 열렸다.
참가팀은 진도, 목포, 무안, 나주, 해남, 강진 등인데 진도군 선수로는 한영교, 조철환, 박동일, 조귀선, 최남진, 곽재필, 김남규, 김원술, 박동판, 박동술, 째보(?), 허양환, 허태환 등이었다.
축구시합은 성대하였는데 벽파방면으로 출전해 오는 해남, 강진 선수단을 맞으러 악대가 마중 나갔다가 그곳 선수와 악대가 만나 북과 나팔을 울리며 진도읍으로 입성을 하고 목포, 무안, 나주 등 방면의 선수들은 해창 으로 맞으러 나가 또 그편의 선수와 악대가 만나 동과 서에서 그 행렬과 나팔소리가 장관이었다 한다.
진도군의 악대장은 채다인씨였고 조기만, 채계만씨 등이 단원 이였다 한다.
이때 박동일(전, 서울약품 사장 박판섭 부친)씨는 금융조합 퇴직금 2천3백원(당시 벼1가마:20원)을 희사 하였다 하는데 전적은 진도군이 우승 하였다(동아일보 8월21일자 및 예향진도12호).
<1936년 진도에서 권투대회>
남조선 권투대회가 동아일보사 주최로 진도에서 개최되었는데 큰 성황을 이루었다(동아일보 7월15일자)
<일제말기 진도의 체육>
1930년대 일제말기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의 유학생들이 학교에서 익히고 여름방학에는 귀향하여 해남 우수영, 완도, 목포 등지로 원정시합을 하고 또는 초청시합을 하는 등 운동행사가 빈번 하였다.
그러나 항상 어려웠던 점은 마음대로 뛸 수 있는 운동장이 없는 것이었는데 운동종목으로는 정구, 야구, 배구, 수구, 탁구, 축구 등이 도입 되었다.
1930년대 본군 체육계의 인물을 소개 하면 축구에는 김석우, 김영태, 곽재술, 허양환, 소진권, 박동인 등이고 마라톤에는 곽병휘, 정구에는 허규, 박동천 등이었다(진도군지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