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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08년04월26일 00시00분 ]

이 공원의 명칭을 아리랑 공원, 또는 철마공원으로 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옥주공원’으로의 명명검토를 또 하나 제안 한다.
이곳 경찰서 자리는 조선500년 동안 옥주관이라는 객사가 자리하고 있어 수  많은 시인, 묵객들이 거쳐 갔던 곳이었고 또한 김광필, 정만석, 장유 등의 암행어사들이 이곳 객사에서 유숙하면서 출도 하여 수많은 군수들을 봉고파직, 또는 직을 떨어뜨렸던 곳이기도 하다.
35대 군수 신효창, 46대 홍우석, 56대 박언근, 65대 최윤호, 16대 이기복, 237대 이후 군수 등이 불호령을 받고 파직 되었던 곳이 이 자리다.
또한 객사인 ‘옥주관’에는 ‘전패’를 안치 하였는데 이 전패는 왕을 상징하는 패로 나무에 ‘전’자를 새겨 출장 온 관리나 군수는 여기에 배례하였으며 만일 훼손하거나 분실되는 경우에는 임금에 대한 모독으로 취급, 수령 및 그 고을이 처벌을 받았었다.
우리 고을은 현종3년(1662) 이곳에 모셔졌던 전패를 분실한 사건으로 현으로 강등되는 사건이 일어났던 역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이 옥주관의 ‘옥주’는 우리고을의 별호인데 이 옥주관 앞에는 주변루라는 누각이 자리하고 있었고 또 그 앞에는 홍살문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한 방안은 옛 건물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유적지 복원의 일환인 옛날 그대로 옥주관, 전패각, 주변루 그리고 홍살문을 이곳에 건립한다면 자연 유적지를 겸한 관광공원이 되고 진도군의 면모를 일신할 수 있는 명물로 자리 할 것으로 살펴 진다.

<철마산 ‘철마’는 찾아와야 된다.>

1994년 진도읍 교동리 박우단(당시,66세)씨는 북산으로 칡을 캐러 갔다가 해발 295m지점에서 조그마한 철마를 주웠는데 당시 진도군 관계자와 진도경찰서는 발굴현장과 발굴품을 확인하고 회수하여 이 철마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문화재 관리국에 제작연대 등에 대한 감정을 의뢰 했다고 하는데 이 감정결과서는 현재 진도군에 보관여부가 불분명하다.
당시 진도군 관광과 담당자였던 조규식(현, 군내 면사무소 근무)씨에 의하면 이 철마는 아주 작았으며 (약13cm)문화재적 가치가 있었다면 감정결과서의 영구보관은 물론 당시 어떤 조치가 있었을 것인데 그렇지는 않았으며 다만 습득자인 박우단씨에게 작은 액수의 돈이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전달되었음을 기억 하고 있었다.
이 철마는 당시 군에서 보관이 어려워 광주박물관에 보관을 의뢰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 군에 보관 전시할 역사유물관이 건립되어 있으니 이 철마를 다시 반환받아 우리 군에서 보관 전시되어야 될 것으로 살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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